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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과 순간 / 버지니아 울프, 자크 랑시에르

작가는 자신의 자유 의지가 아니라 그를 속박하는 어떤 강력하고 비양심적인 폭군에 의해 줄거리[플롯]를 만들고 희극, 비극, 사랑 이야기와 그리고 전체를 감싸는 개연성의 대기를 제공하도록 강요당하며 그러한 개연성은 너무나 흠잡을 데가 없어 만약 그의 인물들이 실제 인간으로 이 세상에 나온다면 그들은 모두 외투의 마지막 단추까지 그 시간의 유행에 맞추어 꽉 채우고 있을 것이다. 폭군은 만들어지고 그리고 소설은 알맞게 완성된다.

...

속을 들여다보면 인생은 ‘이렇다’는 것과는 매우 거리가 멀어보인다. 한 평범한 날의 한 평범한 마음속을 한순간 조사해보라. 그 마음은 무수히 많은 인상들을 받아들인다—하찮은 것, 놀라운 것, 덧없는 것 또는 강철의 날카로움으로 새긴 것. 모든 방향에서 인상들은 수없는 원자의 끊임없는 소나기로 내린다.

-버지니아 울프 <현대소설> 116쪽.


이를 두고 랑시에르는 이렇게 논평한다. 자유로운 작가의 과제는 원자들이 마음속에 떨어지는 순서를 그대로 기록하고 보기에는 제각기 아무런 통일성이 없어 보이더라도 각각의 광경이나 사건이 의식 속에 새겨지는 그 양식을 추적하는 데 있다.

개연성의 논리는 반예술적 거짓말이다. 그럴 법한 대로 배치된 사물의 질서는 감각적 원자들의 위대한 민주주의에 압제를 행사한다. … 진리는 원자들의 낙하에 있다. 진리는 개별적인 것에 있다. 하지만 이는 일상생활의 잇달음과 반복의 무의미한 전개가 아니다. 그것은 원자들의 우발적 편성 각각에 내재하는 위대한 공존, 보편적 삶이다. 개별적인 것을 전체성에 대립시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전체와 다른 전체의 실존 방식이 중요하다. 아주 자연스럽게도 대기적 유형의 전체성이, 눈에 띄지 않는 미립자로 구성되는 확산된 전체성이 유기적 전체 모델을 대체한다.


모던 타임즈, 자크 랑시에르, 양창렬 옮김, 현실문화A. 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