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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바리 부인 / 귀스타브 플로베르


“당신은 때때로 그런 일이 없어요?” 하고 레옹이 말을 계속했다. “옛날에 가졌던 막연한 생각이라든가 아주 먼 곳에서 되살아오는 것 같은 어떤 알 수 없는 이미지, 또는 자신의 가장 은밀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 놓은 것을 책 속에서 발견하는 일 말예요?”


p.141

그 밖에 다른 무슨 할 얘기는 없을까? 그러나 두 사람의 눈은 더욱 진지한 어떤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평범한 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똑같은 번민이 두 사람을 사로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깊고도 계속적인 영혼의 속삭임과도 같아서 육성의 속삭임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이 새로운 그윽함에 놀란 나머지 두 사람은 그 감각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하거나 그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미래의 행복은 열대 지방의 해변처럼 그 앞에 가로놓인 광대무변의 공간에 그 특유의 무기력을 향기로운 미풍인 양 쏘아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거기에 취한 나머지 아직 보이지 않은 수평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졸음에 빠지는 것이었다.


p.158

중류층 마누라들은 그녀의 검소함을, 환자들은 그녀의 예의바름을, 가난한 사람들은 그녀의 자비로움을 칭찬했다.

그러나 그녀는 탐욕과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주름이 똑바로 잡힌 옷은 산란한 마음을 감추고 있었고 그토록 정숙해보이는 입술은 마음의 고뇌를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레옹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마음껏 그려보는 즐거움을 위해 고독을 원했다. 그가 직접 눈앞에 보이면 그 명상의 쾌락이 흐트러지는 것이었다. 엠마는 그의 발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다. 그러다가 막상 그가 앞에 오면 감동이 사라지면서 오로지 커다란 놀라움만이 남았다가 어느덧 그것도 슬픔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p.161

“마님은 게린느하고 똑같네요. 제가 여기 오기 전에 디에프에서 알았던 폴레의 어부 게렝 영감님의 딸이었죠. 표정이 어찌나 슬퍼보였는지 이 아가씨가 그 집 문간에 서 있는 걸 보면 마치 그 집에 초상이라도 난 걸로 생각될 정도였어요. 그 아가씨 병은 꼭 머릿속에 안개가 끼어 있는 것 같은 증세였는데 의사 선생님도 신부님도 어떻게 손 쓸 도리가 없었어요. 병이 심해지면 혼자서 바닷가에 나가서는, 세관 관리가 순회하면서 보니까, 파도가 밀어닥치는 자갈 위에 뒹굴면서 울더래요. 그렇던 것이 결혼을 하고 나자 깨끗이 나았다는 소문이더군요”

“하지만 내 경우에는” 하고 엠마는 대답했다. “결혼을 하고 난 다음부터 생긴 병인걸.”


p.250

그녀는 처녀 시절, 결혼, 연애, 이렇게 차례로 모든 환경들을 거치면서 갖가지 영혼의 모험들에 그걸 다 소비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마치 길가의 여관에 묵을 때마다 재산을 조금씩 흘려놓고 온 나그네처럼 그녀는 인생길 구비구비에서 그것들을 끊임없이 잃어온 것이다.

그러나 도대체 누가 그녀를 이토록 불행하게 만들었는가? 그녀의 존재를 뒤엎어 놓은 그 엄청난 재앙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다시 얼굴을 들어 그녀를 괴롭히는 것의 원인을 찾아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주위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