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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것에 대한 짧은 생각 오직 초록색이 있고 붉은색이 있을 뿐이며, 그것이 전부이다. 그것들은 사물이며,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 → 그것이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나는 살고 싶고 또한 살고 있어. 비록 논리를 거스르고 있다고 할 지라도. 비록 사물의 질서를 믿지 않는다고 해도 봄이면 새싹을 틔우는 작은 이파리들이 내겐 소중하고, 파란 하늘이 소중하고, 때로는 이유 없이 좋아지는 그런 사람이 소중하며,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런 믿음을 버리긴 했지만 어쨌든 아득한 기억에 따라 사람들이 진정으로 존경해 온 인간의 또 다른 위업이 소중한거야. ...궁극적으로 내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의 이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그래, 아예 용납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렴. 난 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이미지의 운명 랑시에르의 이미지의 운명은 문장이 너무 좋아서 읽고 또 읽고 다시 읽어도 또 좋다. 햇빛에 반짝이는 약간의 먼지, 파라솔의 물결무늬 위로 떨어지는 녹은 눈의 물방울, 당나귀 주둥이의 잎사귀, 이것들은 물질에 의한 비유로, 이것들은 사랑의 이유를 사물들의 근거의 커다란 부재와 필적하게 함으로써 사랑을 발명한다. [83p] 모든 이야기가 문장으로 흩어지고, 이 문장 자체도 단어로 흩어지는 세계. [83p] 중요한 것은 영화가 그 시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세계를 만든다는 것, 영화가 세계를 만들어야 했다는 것을 확정하는 것이다. (…) 이 연쇄의 역량은 동질적인 것의 역량, 즉 어떤 공포스런 이야기를 이용해 나치즘과 절멸에 관해 말하는 역량이 아니다. 그것은 이질적인 것의 역량, 즉 샷의 고독..
올해의 문장 개인적으로 꼽아본 올해의 문장들. 인식은 성과를 거두려면 철저히 몰두하는 태세로(바닥을 잃은 채) 대상을 향해 몸을 던져야 한다. 이로써 생겨나는 현기증은 진리의 지표이다. 틀에 박힌, 불변의 권역에서 대두될 수밖에 없는 포용의 충격이란, 거짓에만 해당되는 진실이다. (테오도르 아도르노, 부정변증법, 재인용)주저 없이 객체를 향하고, 힘과 물질의 세계를 포용하며, 그 어떤 근원적 안정도 없이, 개방의 갑작스런 충격으로 번뜩이는 낙하. 고통스러운 자유, 지극히 탈영토적이며, 따라서 언제나 이미 미지의 대상인 것. 낙하는 폐허와 종말, 사랑과 방치, 열정과 굴복, 쇠퇴와 파국을 뜻한다. 낙하는 타락이자 해방이고, 사람이 사물로, 사물이 사람으로 변신하는 상태이다. 낙하는 우리가 견디거나 즐길 만한, 포용할만..
보바리 부인 / 귀스타브 플로베르 “당신은 때때로 그런 일이 없어요?” 하고 레옹이 말을 계속했다. “옛날에 가졌던 막연한 생각이라든가 아주 먼 곳에서 되살아오는 것 같은 어떤 알 수 없는 이미지, 또는 자신의 가장 은밀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 놓은 것을 책 속에서 발견하는 일 말예요?” p.141그 밖에 다른 무슨 할 얘기는 없을까? 그러나 두 사람의 눈은 더욱 진지한 어떤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평범한 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똑같은 번민이 두 사람을 사로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깊고도 계속적인 영혼의 속삭임과도 같아서 육성의 속삭임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이 새로운 그윽함에 놀란 나머지 두 사람은 그 감각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하거나 그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미래의 행복은 열대 지방의..
인상과 순간 / 버지니아 울프, 자크 랑시에르 작가는 자신의 자유 의지가 아니라 그를 속박하는 어떤 강력하고 비양심적인 폭군에 의해 줄거리[플롯]를 만들고 희극, 비극, 사랑 이야기와 그리고 전체를 감싸는 개연성의 대기를 제공하도록 강요당하며 그러한 개연성은 너무나 흠잡을 데가 없어 만약 그의 인물들이 실제 인간으로 이 세상에 나온다면 그들은 모두 외투의 마지막 단추까지 그 시간의 유행에 맞추어 꽉 채우고 있을 것이다. 폭군은 만들어지고 그리고 소설은 알맞게 완성된다....속을 들여다보면 인생은 ‘이렇다’는 것과는 매우 거리가 멀어보인다. 한 평범한 날의 한 평범한 마음속을 한순간 조사해보라. 그 마음은 무수히 많은 인상들을 받아들인다—하찮은 것, 놀라운 것, 덧없는 것 또는 강철의 날카로움으로 새긴 것. 모든 방향에서 인상들은 수없는 원자의 끊임없..
랭보의 영원 영원은태양과 함께 가버린 바다 _ 아르튀르 랭보
비미학 / 알랭 바디우 시가는 언어의 한계에서 도래하는 현전으로서의 다수에 관한 진리를 만들어낸다. 또는 시는 그 경험적 객관성조차 소멸되는 가운데 "여기 있음"의 순수 관념을 현재화하는 능력으로써의 언어의 노래이다. 시는 감각적인 것의 시간 속에서의 사라짐을 비시간적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시는 사라짐의 토대 위에 놓인 현전의 사유이자 직접적인 행동인 동시에, 한 진리의 모든 국지적 형상들과 마찬가지로 사유의 프로그램이며, 강렬한 예측이자, 내재적이면서도 새로이 창조된 ‘다른’ 언어의 도래를 통해 언어를 압박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진리는 어떤 역량임과 동시에 어떤 무력함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는 전체일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와 전체성의 양립 불가함은 현대의 결정적인 -또는 헤겔 이후적인..
게놈 / 지젝 "당신은 게놈이다"나의 실체적 존재를 무의미한 게놈 공식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자아의 환상적인 '재료' 즉 재료로부터 자아가 만들어질 수 없게 재료를 말살하고, 이를통해 나를 순수한 주체로 환원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아무것도 아님', 바로 그것이 주체 자신이다. 계몽의 목표는 완전한 과학적 자기객관화가 아니라 우리가 과학의 논리를 끝까지 따라갔을 때 도래하게 될 새로운 형태의 자유다. ...결론을 내리자.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정신적 능력이 객관적인 도구로 점진적으로 외화된다는 사실이 우리의 인간적 잠재성을 빼앗아간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외화의 해방적 차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우리의 능력이 외부의 기계에 더욱 많이 전치되면 될수록 공허화(emptying)야말로 실체 없는 주체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