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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 한강 내가 가장 처절하게 인생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헐떡이며 클린치한 것은 허깨비였다 허깨비도 구슬땀을 흘렸다 내 눈두덩에, 뱃가죽에 푸른 멍을 들였다그러나 이제 처음 인생의 한 소맷자락과 잠시 악수했을 때, 그 악력만으로 내 손뼈는 바스러졌다 _한강, 그 때
공백 / 지젝 “모든 시작은 부재에 있다. 모든 것을 꽉 잡고 있는 가장 심오한 힘은 비존재이며, 존재에 대한 비존재의 굶주림이다.” 논리와 논리의 선험적 개념들의 영역으로부터 우리는 현실적 삶의 영역으로 넘어가는데, 후자의 출발점은 갈망, 적극적인 현실적 존재에 의해 채워져야 할 공백의 ‘굶주림’이다. 따라서 존재/없음으로부터 ‘무엇인가’ 적극적인 것을 낳는 현실적인 생성으로 정말로 넘어가려면 우리의 출발점인 ‘무’는 ‘살아있는 무’, 어떤 내용을 생성하려는 또는 움켜쥐려는 의지를 표현하는 욕망의 공백이어야 한다는 것이 헤겔에 대한 셸링의 비판이었다. _Slavoj zizek,The Limits of Hegel 44p.
베이컨의 말 59p.매우 모호한 방식을 통해서만 유사하게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바다와 해변을 그린 그림을 한 점 더 추가하는 것에 불과할 겁니다. 81p. 그것이 작품에 존재한다면 무언가를 제거하려고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_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프란시스 베이컨
The xx, VCR
존재하기-사라지기 규칙적으로 정렬된 수직 막대들은 바람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진다. 거기에 있으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숨 쉬듯 흔들리며 변화함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반복적 존재하기-사라지기를 통해 끊임없이 만남과 물러섬이 반복된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이 가까운 …… 난 한시도 조용히 있어본 적이 없단다, 항상 떠들고 떠들고 또 떠들었지,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었어, 침묵이 암처럼 나를 덮쳤거든,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식사를 할 때 였지, 웨이터에게 이렇게 말하려고 했어, "당신이 나한테 그 나이프를 건네주는 모습을 보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하지만 말을 끝까지 이을 수가 없었어, 그녀의 이름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어, 얼마나 이상한지, 나는 생각했어, 얼마나 안달이 나던지, 얼마나 애가 닳던지, 얼마나 슬프던지,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냅킨에 '에나(Anna)' 라고 썼어, …… …… 물론 매일 매 순간 내 마음은 점점 더 작은 조각들로 산산이 깨지지, 내가 조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고, 하물며 말이 없는 사람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해 ..
한숨에 꽃향기 한숨을 쉬었는데 꽃향기가 우연히 들어온거야. 우주가 바다라고 생각했을때. 무수히 많은 예쁜 굴 사이를 헤엄치면서 굴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절대 인상 쓰지 않고, 그 행위가 좋은거야. 2016. 다솔
또 다른 주름 침묵 속에서 밤이 되면 불빛과 동떨어지고 미끈한 조명은 얼굴 위로 내려앉아 나는 너무나 혼자다 여기저기 만져보지만 딱딱하고 속이 비어있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촉감들 마치 플라스틱처럼 나는 어딘가로의 회귀를 꿈꾸지만 밤에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 무엇도 나는 갈 수 없고 생각도 갈 수 없고 침묵속에서 정지한 무엇을 느낀다 아침이 와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둠 깊숙히 숨어든 불안이 주름 사이사이로 새어나가 필사적으로 허공을 바라보지만 그곳엔 허공이 없다 그곳엔 또 다른 주름 공감하지만 그곳에 위로는 없다 내 눈동자도 차갑고 미끄러울 것이다 가벼워 떨릴 것이다 계속되는 허기와 허공의 떨림들 침묵 속에서 이 모든 것은 정지해 있는 것이다 나는 이곳으로 회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