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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의 고민 뭔가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이 들면그래서 뭘 어떻게 표현할껀데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내가 시도했던 표현들의 무수한 실패가 떠오르는 것이다.그 작고도 수많은 실패들을 토대로 또 나는 표현이 잘 안되던데 하고 움츠리게 되고그럼 무슨 이야길 하고 싶은데 하고 생각해보면한참을 아무 생각이 안나다가, 아주 작고 초라한 것이 생각나면, 이 생각이 정말 나의 생각이 맞나.또 그런 생각을 하고 앉아있는 것이다.그래서 글만 쓴다.표현으로써의 글이 아닌 최소한의 생각 덩어리들을 뱉어내는 용도의 단어와 문장들만. ✦ 우선 생각을, 아주 보잘것없는 생각을 파내고 파내 흙을 털어내고 잘 가다듬어야한다.그리고 그것을 이렇게 저렇게 배치해보고 좋아하는 빛깔로 비춰보아야한다. ✦ 피터 멘델선드의 책 Cover의 한 구절이 도움이 될 ..
내가 예술을 보는 방식 나는 영화를 볼 때 감독이 누군지, 스토리가 어떤지, 배경지식이 전무한 상태로 극장에 가곤 한다. 시놉시스와 해석을 알고 보기보다는 이미지 그 자체로 감각하고—이미지를 감상하는 동안 어떤 해석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게 싫다—, 모호한 부분은 감독의 의도대로 모호함을 느끼고,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의문의 상태를—영화 보는 순간만큼이라도, 왜냐면 영화가 끝나는 즉시 감독의 의도와 평론가의 해석들을 찾아볼 것이기 때문에—느끼는 게 좋다.그리고 이런 태도는 영화뿐 아니라 다른 모든 예술에도 적용된다. 책, 그림 등 어떤 작품을 보더라도 배경지식을 갖지 않은 무지의 상태, 작품을 마주한 나의 감각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태로서 맞닥뜨리는 것. 그것이 내가 인상적인 예술을 마주할 때마다 원하는 것이다.분석과 해석..
타인 타인의 눈으로 보는 사진이 가능할까?사진은 필연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의 시선일 수 밖에 없는데사진으로 타인의 시선을 표현할 수 있을까?
디자인 교육에 관한 개인적 분풀이 “내가 과연 ‘제대로 된’ 디자인 교육을 받았나”가 아니라 “내가 받은 교육이 디자인이 맞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건 철저히 나의 개인적 경험이다. 따라서 다른 대학, 다른 학과의 사정은 모르며, 우리나라 디자인 교육이 이렇다는 글이 아니다. 현대의 디자이너는 어떻게 보자면 예술가보다도 조형성에 매진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말하는 예술가는 전통적인-재현적인 혹은 아름다운- 예술가가 아닌 아카이빙, 퍼포먼스,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 설치 등의 작업을 선보이는 지금 시대의 예술가이다. 회화 마저도 모더니즘 이후부터는 아름다움/조형성과는 전혀 다른 지점을 고민하고 있다. 그런 시각에서 보자면 지금의 (시각.브랜딩.산업.UI.인테리어 등 업계와 상관 없이) 디자이너는 예술가보다도 아름다움을 고민하는 집단이라고..
체제가 아닌 개인을 비판하기 - 모던 타임즈 역사적 필연성은 전 지구화globalization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전 지구화는 그 자체로 텔로스 쪽으로 방향이 맞춰진 시간이었다. 텔로스는 더는 혁명이 아니었다. 전 지구적 자유 시장의 승리가 텔로스였다. …이 (마르크스의) 대서사는 그것이 파괴하기로 되어 있던 질서(자본주의)의 경영자들에게 인수되어 재활용됐다. 이전엔 체계의 부정의를 비판했지만 이제는 그와 못지않게 체계의 희생자들, 그저 번갈아 일어나는 사태의 시간 속에 머무는 거주자들의 무지도 비난한다. 비판적 담론은 희생자들이, 자유 시장의 자유(소비지상주의적 나르시시즘의 가치 등)를 내면화하는 수동적 형태 혹은 반권위적이고 자유지상주의적인 가치를 홍보하는 능동적 주장의 형태로든 자유시장의 시간에 너무 잘 적응하여 자유 시장의 요구를 충족시..
인상과 순간 / 버지니아 울프, 자크 랑시에르 작가는 자신의 자유 의지가 아니라 그를 속박하는 어떤 강력하고 비양심적인 폭군에 의해 줄거리[플롯]를 만들고 희극, 비극, 사랑 이야기와 그리고 전체를 감싸는 개연성의 대기를 제공하도록 강요당하며 그러한 개연성은 너무나 흠잡을 데가 없어 만약 그의 인물들이 실제 인간으로 이 세상에 나온다면 그들은 모두 외투의 마지막 단추까지 그 시간의 유행에 맞추어 꽉 채우고 있을 것이다. 폭군은 만들어지고 그리고 소설은 알맞게 완성된다....속을 들여다보면 인생은 ‘이렇다’는 것과는 매우 거리가 멀어보인다. 한 평범한 날의 한 평범한 마음속을 한순간 조사해보라. 그 마음은 무수히 많은 인상들을 받아들인다—하찮은 것, 놀라운 것, 덧없는 것 또는 강철의 날카로움으로 새긴 것. 모든 방향에서 인상들은 수없는 원자의 끊임없..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읽다가 원작에는 그 그림에 대한 어떤 정보를 통해서도 느낄 수 없는 침묵과 고요함이 있다. 이는 실제 물질 즉 물감에 스며있어서, 보는 이는 그 물질성을 통해 화가의 몸짓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화가가 그림을 그렸던 시점과 누군가 그 그림을 바라보는 시점 사이의 시간적 거리가 줄어드는 효과가 생겨난다. 이런 특별한 의미에서 회화는 동시대적이고, 따라서 작품이 증언하는 내용도 즉각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37쪽. 단지 물질성에 담겨있는 행동을 따라가 볼 수 있다고 해서 그게 시간적 거리가 줄어드는 것일까? 고대 유물을 보고 행동을 유추한다고 해서 시간적 거리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물질로만 봤을 때 동시대적일 수 없으며 눈앞에 있는 게 동시..
알랭바디우 비미학을 읽다가 이 책에서 바디우에 의하면 현대 철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진리의 무력함이다. 모든 진리는 어떤 역량임과 동시에 어떤 무력함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는 전체일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와 전체성의 양립 불가함은 현대의 결정적인—또는 헤겔 이후적인— 가르침일 것이다.하나의 진리는 자신의 독특함이라는 바위에 부딪히며, 바로 여기에서만 하나의 진리가 무력함으로서 ‘실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이 장애물을 명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는 어떤 진리가 그것에 대해서 이름 붙이기를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진리에 포함되는지 진리 자신도 미리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철학은 진리를 생산할 수 없으며 진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오로지 예술, 즉 '사유할 수 없는 사유'인 시라 말한..